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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어니스트 섀클턴 리더십' 필요하다

[포럼] '어니스트 섀클턴 리더십' 필요하다

 

국방전산정보원장 유천수

 


나는 이번 직장이 네번째다. 무기체계를 연구개발하는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시작해 과거 정보통신부 산하의 정보화진흥원을 거쳤으며, 얼마 전까지는 한국국방연구원에서 국방정보화 정책과 관련한 주제로 연구하는 연구원이었다. 현재는 정부책임운영기관으로 지정된 국방전산정보원의 원장으로 재직 중인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이라는 뜻으로 개방형 직위에 임용된 민간인을 일컬음)이다. 이전 근무했던 기관에서 연구실장 또는 센터장 보직을 맡아 중간급 관리자로 활동하며 리더십에 대해 고민했었지만 기관장 위치에선 지금도 그 고민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연구기관의 연구과제책임자나 보직자는 연구계획을 수립하면서 하부 연구주제별로 전문성에 부합하다고 판단되는 연구원들에게 업무를 할당하고 본인도 일정한 주제를 맡아 수행한다. 이후 연구일정 상 중요한 마일스톤에서 개별 연구원들의 결과를 종합한 후 이를 하나의 의미 있는 산출물로 작성하거나 과제평가를 대표하는 것이 주 업무다. 내가 근무했던 연구기관의 경우 1년에 3개 정도를 연구과제책임자로, 2개 과제는 다른 연구과제의 참여 연구원으로 일해야 양적 평가를 달성하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환경에서 일하며 나는 참여 연구원들을 전문가로 믿고 결과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위임형 리더십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하지만 세상 일이 늘 그렇듯이 중간과정을 세밀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최종 결과를 종합할 때 그 일을 해내지 못하는 사람에 의해 낭패를 보게 된다. 자신도 과제의 일부를 담당해 5개 정도의 소주제별로 아웃풋을 작성해야 하는 처지에서 참여 연구원들에게 맡긴 연구내용을 완벽하게 조정·통제하는 일이란 쉽지 않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전자정부 사업관리기관이며 국가정보화와 관련한 다양한 임무기능을 전담해 수행하는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이다. 그 명칭에 해당 기관의 성격이 그대로 함축돼 있듯이 매년 해당 부처와 협약을 맺고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의 예산을 받아 사업을 집행하는 역할이 핵심이다. 2000년대 초반은 이비즈 정책과 사업 추진에 있어 산업부와 경쟁을 벌이던 정보통신부가 산하 기관을 통해 대리전을 치르던 시기다. 이러한 구조에서 사업책임자나 부장은 부처가 요구하는 성과목표에 맞춰 실적을 내야 하는 압박에 처할 수밖에 없다. 실적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고 속도가 중시되는 현장의 지휘관으로서 강력한 카리스마가 요구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행동했다. 훗날 당시를 되돌아보았을 때 마치 자전거 페달을 돌리지 않으면 쓰러지고 말 것이라는 강박감과 잭 웰치의 리더십에 경도됐던 자신을 발견한다. 안으로나 밖으로나 주변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뒤돌아보니 나와 함께 일하는 직원 대부분은 부상하거나 낙오된 채였음을 알게 됐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기관은 전군 공통의 정보시스템 획득 및 운영유지를 핵심 업무로 하는 국방정보화 사업 집행 전문기관이다. 정부직제에 의한 조직으로서 공무원과 현역이 함께 일하고 있다. 공무원들은 보통 2년 내외를 주기로 전출입을 하며 경력을 쌓아 가고 현역 또한 진급, 전역, 교육 파견 등의 여러 사유로 인하여 한 곳에서 3년을 넘겨 근무하는 사람은 드물다.

 

국방정보화라는 고도의 전문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임에도 지식이나 경험을 기관 내부에 축적하기 어렵다. 정부조직 특성 상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수단이 별로 없고 현재 운영되고 있는 책임운영기관 평가가 기관장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현실에서 리더십 딜레마는 전혀 다른 고민거리다.

 

신임 기관장으로서 성과에 대한 조급증과 다른 기관에서 성공했던 모델을 적용하고 싶은 욕구를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동시에 새로운 조직의 구성원들과 환경 및 문화적 특성을 이해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속도보다는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노를 잘 젓지 못하는 구성원들을 더 몰아대거나 배에서 내리도록 하기 보다는 늦더라도 함께 가야한다는 자각을 통해 익숙하지는 않지만 섬기는 리더십을 실천해 가는 중이다. 이 또한 뒤에 좋은 리더십 모델이었느냐를 두고 스스로 평가해 보는 시간을 거치게 될 것 같다.

 

어느 상황에서도 적용 가능한 이상적 리더십 모델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현재 근무하고 있는 기관까지 네 곳을 거치는 동안 리더의 바람직한 역할과 자세에 대해 고민하고 때로 특정한 모델을 모범 삼아 실천해 왔지만 정답은 없는 것 같다는 결론이다. 상황론을 경계하되 '잘못을 고치기를 꺼려하지 말지어다(過則勿憚改)'라는 공자님 말씀 속에 오늘을 살아가는 길이 있음을 안다.

 

남극대륙 횡단이라는 위대한 항해에는 비록 실패했지만 634일간 빙하에 덮인 남극해를 표류하면서도 전 대원을 무사히 생존시키겠다는 목표를 이루어 가는 과정마다 어니스트 섀클턴이 발휘한 리더십 행동의 정수를 실전에서 갈고 닦으며 자신 앞에 놓인 길을 구성원들과 함께 헤쳐 나가는 것이 리더들의 현명한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2018.6.27. '[디지털타임스] (포럼)어니스트 섀클턴 리더십 필요하다'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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